첫번째 이야기/하루의 기록
~ 2008년 6월 16일
레이아린
2008. 6. 16. 18:04
2008년 6월 16일 월요일, 날씨 제법 선선
e하루616에 오늘 하루를 수집할 겸 블로그를 만든 이후로 처음으로 하루의 기록다운 기록을 해본다.
하루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오늘까지의 기억나는 하루하루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랄까.
2008년 2월 20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진작에 준비를 하지 않아 엄마, 아빠까지 번거롭고 신경을 쓰이게 하길 몇 차례.
처음으로 구했던 집은 나의 싫다는 의견을 알아채지 못한 아빠, 엄마로 인해 우울해하다가
결국은 '다른 집을 구해보자' 라고 하여 그 뒤로도 두, 세번은 더 여기저기 집을 알아봐야 했고, 대학교 입학철과 겹치는 바람에 그 고생은 더욱 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서울로 갔더라면,
이렇게 몇 번에 걸쳐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 겨울방학을 하고나서 바로 구했으면 원래 계획했던 서울로 갈 수 있었을까? 라는 뒤 늦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부모님께 온갖 민폐를 다 끼치며 3월 3일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챙겨 이사를 오게되었다.
그리고 첫날, 밤 늦게까지 있었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웠을 때의 고요함이 그렇게나 싫을 수가 없었다.
30분 전만 해도 시끌시끌 엄마와 아빠가 있었는데....
괜스레 잠을 설치고, 집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뒤에나 잠을 들 수 있었다.
역시 낮선 곳이었을 까 자동적으로 7시에 떠지는 눈.
그렇게 2~3일 가량 몇 시에 자더라도 7시 쯤 떠지는 눈에 맞추어 하루 계획표를 짰다.
그렇게 4월 4일 까지 별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해오다가 문제의 4월 5일.
졸업을 하고 처음 친구들을 만나러 대구로 올라가게 되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온 내게 신발은 운동화 하나, 부츠 하나.
입은 옷과 운동화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츠를 신을 수 밖에 없었다.
40분가량을 지하철을 타고, 표를 끊고, 기차를 타고 오랫만에 내린 대구역.
혼자 놀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하니 오후 9시 가량..
다음 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젠장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단순하게 '어제 너무 놀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하루를 '푹' 쉬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렇게 4월 9일이 되었고 투표를 하기 위해 한달여 만에 집으로 갔다.
투표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지만 가슴 속이 뻥 뚫린 사라져버린 의지.
그 다음주도 다다음주도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알게된 경악에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정부의 모습에
그저 뭔가에 홀린 듯 컴퓨터만 끊임없이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안되겠다! 싶어서 2006년 부터 취미로 하던 홈페이지 제작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페이스 이상으로 무리한 인터넷을 한 탓에 의욕이 돌아오고 있다.
닫혀있는 싸이월드 일촌평에 글을 남겨준 1년 전 한달간의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영동중학교 3학년 3반의 몇몇 아이들이 남겨준 글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했고..!!
(고작 한달 이었을 뿐인데 아직 기억해주고 있는 것도 고맙고 짧은 기간 경험했던 '선생님'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멋진 직업이었다.)
이상하게도 '전공에 관한 영역을 제외한 모든것'은 비정상적으로 오래 유지하다보면 어느날 찾아오는 '하기싫어 라는 변덕'
이번에도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6월 6일 부터 찾아온 급격하게 사그라드는 컴퓨터에 관한 관심. (어쩌면 갈 때까지 가버린 한국의 모습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뉴스에 대한 현실회피인지도 모르겠다.)
내년 이맘 때에는 진짜 '선생님'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하루616에 오늘 하루를 수집할 겸 블로그를 만든 이후로 처음으로 하루의 기록다운 기록을 해본다.
하루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오늘까지의 기억나는 하루하루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랄까.
2008년 2월 20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진작에 준비를 하지 않아 엄마, 아빠까지 번거롭고 신경을 쓰이게 하길 몇 차례.
처음으로 구했던 집은 나의 싫다는 의견을 알아채지 못한 아빠, 엄마로 인해 우울해하다가
결국은 '다른 집을 구해보자' 라고 하여 그 뒤로도 두, 세번은 더 여기저기 집을 알아봐야 했고, 대학교 입학철과 겹치는 바람에 그 고생은 더욱 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서울로 갔더라면,
이렇게 몇 번에 걸쳐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 겨울방학을 하고나서 바로 구했으면 원래 계획했던 서울로 갈 수 있었을까? 라는 뒤 늦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부모님께 온갖 민폐를 다 끼치며 3월 3일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챙겨 이사를 오게되었다.
그리고 첫날, 밤 늦게까지 있었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웠을 때의 고요함이 그렇게나 싫을 수가 없었다.
30분 전만 해도 시끌시끌 엄마와 아빠가 있었는데....
괜스레 잠을 설치고, 집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뒤에나 잠을 들 수 있었다.
역시 낮선 곳이었을 까 자동적으로 7시에 떠지는 눈.
그렇게 2~3일 가량 몇 시에 자더라도 7시 쯤 떠지는 눈에 맞추어 하루 계획표를 짰다.
그렇게 4월 4일 까지 별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해오다가 문제의 4월 5일.
졸업을 하고 처음 친구들을 만나러 대구로 올라가게 되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온 내게 신발은 운동화 하나, 부츠 하나.
입은 옷과 운동화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츠를 신을 수 밖에 없었다.
40분가량을 지하철을 타고, 표를 끊고, 기차를 타고 오랫만에 내린 대구역.
혼자 놀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하니 오후 9시 가량..
다음 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젠장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단순하게 '어제 너무 놀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하루를 '푹' 쉬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렇게 4월 9일이 되었고 투표를 하기 위해 한달여 만에 집으로 갔다.
투표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지만 가슴 속이 뻥 뚫린 사라져버린 의지.
그 다음주도 다다음주도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알게된 경악에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정부의 모습에
그저 뭔가에 홀린 듯 컴퓨터만 끊임없이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안되겠다! 싶어서 2006년 부터 취미로 하던 홈페이지 제작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페이스 이상으로 무리한 인터넷을 한 탓에 의욕이 돌아오고 있다.
닫혀있는 싸이월드 일촌평에 글을 남겨준 1년 전 한달간의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영동중학교 3학년 3반의 몇몇 아이들이 남겨준 글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했고..!!
(고작 한달 이었을 뿐인데 아직 기억해주고 있는 것도 고맙고 짧은 기간 경험했던 '선생님'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멋진 직업이었다.)
이상하게도 '전공에 관한 영역을 제외한 모든것'은 비정상적으로 오래 유지하다보면 어느날 찾아오는 '하기싫어 라는 변덕'
이번에도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6월 6일 부터 찾아온 급격하게 사그라드는 컴퓨터에 관한 관심. (어쩌면 갈 때까지 가버린 한국의 모습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뉴스에 대한 현실회피인지도 모르겠다.)
내년 이맘 때에는 진짜 '선생님'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