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피곤하지 않은 이상 꿈도 안 꾸고, 잘 자는 편인데..
근래에 들어와서는 매일 아침(혹은 늦은 오후) 눈을 뜨면 개운하지가 않다.
매일 밤 반복되는 꿈. (정확히 말하면 흔히 말하는 개꿈이랄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라는 현실 + (국내)만화주인공 총 출동 llorz
최근에 초등학교-중학교때 미친듯이 사봤던 밍크, 파티, 윙크- 에서
연재하던 책들을 본 탓이었을까.
낭길리마, 마린블루, 엄마는 요술쟁이, 여왕의 기사, 스톰, 아기자기 색동, BiBi아이리스, HUSH, 캐쉬걸, 스위티잼 등등-
보고 싶었던 롤러코스터, 파파야, 몽환전설은 전자책으로 나오지 않은 건지 없었기에 패스
만화가분들의 근황이 궁금해서 검색을 해봤지만, 작품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걸까-
신간은 커녕 제대로 된 근황도 알 수 없었다.
김강원, 하시현, 문계주, 어숙일, 김숙희, 강은영 님 등등-
1996년 부터 2002년 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샀던 밍크-
거기에 영향을 받아 어둠의 구렁텅이로 붙잡고 늘어진 김동생의 파티-
오디션(천계영) 단행본 나오는 시간이 싫어서 사 봤던 윙크-
뭐 볼게 있나 싶어서 한 두번 사본, 이슈, 슈가, 케이크
저렇게나 만화잡지에 빠져살았는데 고3이 되면서 만화책을 끊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영 이별을 했던 것 같다.
(기숙사에 들어간 사이 밍크 세박스를 나 몰래 내다버린 엄마의 원인이 젤 컸지만 ㅠㅠ)
고이 아껴두고 있던 책속 부록도,
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비상금 7만원도 그렇게 날아간 아프디 아픈 기억이.. llOTL
절대 버리지 않기로 약속을 받았기에 세뱃돈을 끼워두었었는데
기숙사 들어간 사이 그렇게 버릴 지 누가 알았나 ㅠ
(그 뒤로는 절~ 대로 책 사이에 돈을 끼워두는 짓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버려진 만화책도 여러권.
보지 않을 것 같아서 팔려고 놔둔
언플러그드 보이랑 오디션도 엄마가 버리는 바람에 거래파기.
여왕의 기사, 몽환전설- 기숙사 들어간 사이 전부 재활용창고 행. llorz
그렇게 좌절한 뒤 다시는 만화책은 사지 않을꺼야!!! 라고 다짐했지만,
디엔엔젤을 시작으로 다시 불어난 만화책과 회지.
만화책을 보렸다가 난리법석을 피운전적도 있거니와-
이제 뭘 사든, 뭘 보든 신경쓰지 않는 어머니. 어머니!
다시 한번 잊지 않겠다. 김동생.
눈에 너무 잘 띄는 곳에 있었던 18금 재록본을...
대륜이한테, 엄마한테 틀킨 그 기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쨌거나- 결론은-
내가 예전에 꼬박꼬박 챙겨보던 만화책의 작가분들은 다들 무얼 하고 계실까~
추억
- 만화책의 추억 2008.08.14 10
- ~ 2008년 6월 16일 2008.06.16 2
만화책의 추억
2008. 8. 14. 18:00
~ 2008년 6월 16일
2008. 6. 16. 18:04
2008년 6월 16일 월요일, 날씨 제법 선선
e하루616에 오늘 하루를 수집할 겸 블로그를 만든 이후로 처음으로 하루의 기록다운 기록을 해본다.
하루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오늘까지의 기억나는 하루하루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랄까.
2008년 2월 20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진작에 준비를 하지 않아 엄마, 아빠까지 번거롭고 신경을 쓰이게 하길 몇 차례.
처음으로 구했던 집은 나의 싫다는 의견을 알아채지 못한 아빠, 엄마로 인해 우울해하다가
결국은 '다른 집을 구해보자' 라고 하여 그 뒤로도 두, 세번은 더 여기저기 집을 알아봐야 했고, 대학교 입학철과 겹치는 바람에 그 고생은 더욱 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서울로 갔더라면,
이렇게 몇 번에 걸쳐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 겨울방학을 하고나서 바로 구했으면 원래 계획했던 서울로 갈 수 있었을까? 라는 뒤 늦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부모님께 온갖 민폐를 다 끼치며 3월 3일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챙겨 이사를 오게되었다.
그리고 첫날, 밤 늦게까지 있었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웠을 때의 고요함이 그렇게나 싫을 수가 없었다.
30분 전만 해도 시끌시끌 엄마와 아빠가 있었는데....
괜스레 잠을 설치고, 집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뒤에나 잠을 들 수 있었다.
역시 낮선 곳이었을 까 자동적으로 7시에 떠지는 눈.
그렇게 2~3일 가량 몇 시에 자더라도 7시 쯤 떠지는 눈에 맞추어 하루 계획표를 짰다.
그렇게 4월 4일 까지 별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해오다가 문제의 4월 5일.
졸업을 하고 처음 친구들을 만나러 대구로 올라가게 되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온 내게 신발은 운동화 하나, 부츠 하나.
입은 옷과 운동화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츠를 신을 수 밖에 없었다.
40분가량을 지하철을 타고, 표를 끊고, 기차를 타고 오랫만에 내린 대구역.
혼자 놀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하니 오후 9시 가량..
다음 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젠장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단순하게 '어제 너무 놀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하루를 '푹' 쉬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렇게 4월 9일이 되었고 투표를 하기 위해 한달여 만에 집으로 갔다.
투표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지만 가슴 속이 뻥 뚫린 사라져버린 의지.
그 다음주도 다다음주도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알게된 경악에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정부의 모습에
그저 뭔가에 홀린 듯 컴퓨터만 끊임없이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안되겠다! 싶어서 2006년 부터 취미로 하던 홈페이지 제작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페이스 이상으로 무리한 인터넷을 한 탓에 의욕이 돌아오고 있다.
닫혀있는 싸이월드 일촌평에 글을 남겨준 1년 전 한달간의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영동중학교 3학년 3반의 몇몇 아이들이 남겨준 글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했고..!!
(고작 한달 이었을 뿐인데 아직 기억해주고 있는 것도 고맙고 짧은 기간 경험했던 '선생님'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멋진 직업이었다.)
이상하게도 '전공에 관한 영역을 제외한 모든것'은 비정상적으로 오래 유지하다보면 어느날 찾아오는 '하기싫어 라는 변덕'
이번에도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6월 6일 부터 찾아온 급격하게 사그라드는 컴퓨터에 관한 관심. (어쩌면 갈 때까지 가버린 한국의 모습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뉴스에 대한 현실회피인지도 모르겠다.)
내년 이맘 때에는 진짜 '선생님'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e하루616에 오늘 하루를 수집할 겸 블로그를 만든 이후로 처음으로 하루의 기록다운 기록을 해본다.
하루의 기록이라기 보다는 오늘까지의 기억나는 하루하루의 기록을 종합한 것이랄까.
2008년 2월 20일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
진작에 준비를 하지 않아 엄마, 아빠까지 번거롭고 신경을 쓰이게 하길 몇 차례.
처음으로 구했던 집은 나의 싫다는 의견을 알아채지 못한 아빠, 엄마로 인해 우울해하다가
결국은 '다른 집을 구해보자' 라고 하여 그 뒤로도 두, 세번은 더 여기저기 집을 알아봐야 했고, 대학교 입학철과 겹치는 바람에 그 고생은 더욱 배가 되어버렸다.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서울로 갔더라면,
이렇게 몇 번에 걸쳐 집을 구하러 다니기도 힘들었을 거란 생각에 겨울방학을 하고나서 바로 구했으면 원래 계획했던 서울로 갈 수 있었을까? 라는 뒤 늦은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부모님께 온갖 민폐를 다 끼치며 3월 3일 공부에 필요한 최소한의 짐을 챙겨 이사를 오게되었다.
그리고 첫날, 밤 늦게까지 있었던 엄마, 아빠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 침대에 누웠을 때의 고요함이 그렇게나 싫을 수가 없었다.
30분 전만 해도 시끌시끌 엄마와 아빠가 있었는데....
괜스레 잠을 설치고, 집에 도착했다는 엄마의 전화를 받은 뒤에나 잠을 들 수 있었다.
역시 낮선 곳이었을 까 자동적으로 7시에 떠지는 눈.
그렇게 2~3일 가량 몇 시에 자더라도 7시 쯤 떠지는 눈에 맞추어 하루 계획표를 짰다.
그렇게 4월 4일 까지 별 문제 없이 하루하루를 생활해오다가 문제의 4월 5일.
졸업을 하고 처음 친구들을 만나러 대구로 올라가게 되었다.
날씨가 조금 따뜻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소한의 짐만 가지고 온 내게 신발은 운동화 하나, 부츠 하나.
입은 옷과 운동화는 절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무릎 아래까지 오는 부츠를 신을 수 밖에 없었다.
40분가량을 지하철을 타고, 표를 끊고, 기차를 타고 오랫만에 내린 대구역.
혼자 놀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다시 기차를 타고 내려와 집에 도착하니 오후 9시 가량..
다음 날,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 젠장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단순하게 '어제 너무 놀았나 보다' 라는 생각에 하루를 '푹' 쉬어버렸다.
하지만 그 다음날에도 다음날도 마찬가지..
그렇게 4월 9일이 되었고 투표를 하기 위해 한달여 만에 집으로 갔다.
투표를 하고, 저녁을 먹고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지만 가슴 속이 뻥 뚫린 사라져버린 의지.
그 다음주도 다다음주도 의욕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다음 아고라 등을 통해 알게된 경악에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정부의 모습에
그저 뭔가에 홀린 듯 컴퓨터만 끊임없이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안되겠다! 싶어서 2006년 부터 취미로 하던 홈페이지 제작 주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슬슬 페이스 이상으로 무리한 인터넷을 한 탓에 의욕이 돌아오고 있다.
닫혀있는 싸이월드 일촌평에 글을 남겨준 1년 전 한달간의 짧은 인연으로 만났던
영동중학교 3학년 3반의 몇몇 아이들이 남겨준 글을 보면서 다시 힘을 내기도 했고..!!
(고작 한달 이었을 뿐인데 아직 기억해주고 있는 것도 고맙고 짧은 기간 경험했던 '선생님'이라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너무나 멋진 직업이었다.)
이상하게도 '전공에 관한 영역을 제외한 모든것'은 비정상적으로 오래 유지하다보면 어느날 찾아오는 '하기싫어 라는 변덕'
이번에도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6월 6일 부터 찾아온 급격하게 사그라드는 컴퓨터에 관한 관심. (어쩌면 갈 때까지 가버린 한국의 모습에 끊임없이 터져나오는 뉴스에 대한 현실회피인지도 모르겠다.)
내년 이맘 때에는 진짜 '선생님' 이라는 말을 듣고 있는 내가 되어있었으면 좋겠다.